가제트 – 광주 여행 리뷰

오디세이에서 가는 두 번째 여행지는 바로 광주였다. 경기도 광주 아니고 전라도 광주. 이번 여행은 특별한 점이 있었다. 먼저 하와이에서 온 손님인 알로나와 푸코노와 함께 여행을 간다는 점. 두 번째는 여행지만 가는 것이 아니라 광주에 있는 청소년 삶디자인 센터의 학생들과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첫날 손오공이라는 별칭을 가지신 버스 기사님과 함께 광주 출발했다.

사실 하자의 별칭 문화는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는 생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버스 기사님이 손오공이라는 별칭으로 불러달라고 하셨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단순히 “기사님~”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훨씬 친근했다. 계약 상의 관계보다 여행에 함께하는 동료라는 느낌일까나…  어쨋든 그렇게 광주로 도착하였다. 광주에 지내는 4일 내내 굉장히 더운 날씨가 지속되었다. 심지어 모기도 있었는데 우리가 그냥 서울에서 말하는 모기가 아니라 새끼손가락만 한 엄청난 모기들 천지였다.

삶디 센터에 처음 갔을 때, 굉장히 놀랐다. 단언컨대 최고의 청소년 센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자 센터의 경우 따뜻하고 정감있지만, 너무 더럽다. 정이 너무 많이 가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그리킨디 센터에는 너무 깨끗하고 첨단 시설이 많은 나머지 따뜻하고 정감이 느껴지는 공간보다는 그냥 사무실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삶디 센터에 들어서니 그 가운데의 적정선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센터에 들러 짐을 풀어놓은 후 ACC에 갔다. ACC는 아시아 문화 전당이라는 곳인데, 5・18민주 항쟁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이 치열한 전투를 싸웠던 곳이기도 하다. ACC와 시청은 붙어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ACC의 경우 모두 지하에 건물이 있다. 지하 깊이가 25미터라고 한다.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하고, 루브르 박물관보다도 큰데 왜 눈에 띄지 않게 지하에 지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것은 ‘그 어떤 것도 위대한 민주주의 위에 있을 순 없다’는 건축가의 의견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밖에서 봐도 건물들이 지하에 있어서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를 우상으로 하는 그런 훌륭한 의미를 담고 있으니 이 정도는 봐주도록 하자. 멋지니까..

건물들과 함께 전시품도 구경했다. 전시품에는 당시  5・18민주 항쟁에 참여했으면 어땠을지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전시품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시위대 모형 사이를 지나며 함께 걷는 전시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쉬워서 꼭 다시 한번 방문했으면 하는 장소이다. 관람을 끝낸 후 우리는 삶디로 돌아가 이신이라는 교수님의 통일과 관련된 강의를 들었다.

그중 퐁이 “북미 회담 취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질문에 “곧 다시 이루어질 것. 트럼프는 북미 회담을 하고 싶어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정확히 그 말이 맞았다. 우리가 광주에서 서울로 돌아오고 며칠 뒤, 북미 회담 날짜가 다시 잡혔다. 그분이 28년간 통일 관련 운동을 했어도 그렇게 북미 회담이 다시 열릴 것이라 단언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는데, 그 기사를 보자마자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분의 친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계엄군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것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게 대단하다. 과연 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 그 분들처럼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힘들 것 같다. 그렇게 당당하게 끝까지 맞설 용기가 날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후에 하와이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알로나가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는 굉장히 챙겨주셨다. 삶디씨 분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우리가 먼저 앞에서 시범을 보일 수 있는 기회도 주셨다. 오디세이와 알로나가 함께 삶디를 찾은 손님으로 생각해 주신 것 같았다. 그렇게 하와이 워크숍은 광주에 있는 동안 세 번이 진행되었다. 사실 하와이 워크숍은 하자에서도 이미 여러 번 했던 것인데, 굳이 여기서 이렇게 많이 진행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삼디씨와 함께할 수 있다는 점과 알로나의 손자 푸코노의 춤실력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레드 페스타 행사가 열린 날, 우리는 하와이식 집회를 배워 함께 레드 페스타의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먼저 레드 페스타는 5・18민주 항쟁을 기억하기 위한 청소년들의 페스티벌이었다. 기획부터 진행까지 청소년 진행단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우리끼리 노는 느낌이었다. 조금 더 우리가 어떤 의식을 치르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우리가 너무 “이카라카쿠 에 쿠기에 쿨리아!”이런 것만 하니까 사람들이 그냥 ‘신기하다’고 말하고 지나간다. 우리가 정확히 뭘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외 청소년들이 기획한 연극은 정말 훌륭하였다. 다음에 또 광주를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서울에서도 청소년들 위주의 공연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세 번째 날에는 삶디씨와 함께 광주 투어를 했다. 살미씨가 우리를 위해 준비한 여행 코스였다. 먼저 30년도에 지어진 광주 극장에 갔다. 광주 극장에서는 영화 ‘시네마 천국’이 생각나게 하는 공연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은 이승환이 이런 공연장에서 공연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정말 역사적인 배경도 멋있었고, 이승환이 꼭 공연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점심 식사 때에는 그 동네 시장에 있는 치킨집을 갔다. 치킨 한 마리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보통 서울에서 파는 치킨은 닭인지 병아리인지 하는데 여기서는 정말 푸짐했다. 그렇게 배부르게 밥을 먹고, 광주 지하철을 통해 ACC 센터에 갔다. 첫 날에도 간 ACC였지만, 이번에는 시청보다는 ACC센터 위주로 설명을 들었다. 첫날에는 못 봤던 것을 보아서 좋았다. 사실 첫날에는 그렇게 클 줄 몰랐는데,  ACC센터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다. 여기도 꼭 한번 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우리는  5・18 묘지를 찾았다. 알로나와 푸코노가 헌화를 하고, 향을 올렸다. 보통 학교에서 묘지를 방문하면 신묘만 방문하지만, 우리는 구묘역도 방문했다. 그중 가장 웃겼던 것은 전두환 대통령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는데, 사람들이 보기 싫다고 땅에다가 박은 후에 누구나 밟으라고 방치해 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서 이제는 돌에 뭐라고 새겨졌는지 잘 모를 정도로 닳아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봤던 기자위르겐 힌츠 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 등이 안치된 묘도 방문하였다. 그리고 광주에서 마지막 식사는 불고기였다. 정말 맛잇었지만 양이 작아서 밥을 몇 그릇을 먹었던 건지 모르겠다.. 세 그릇은 먹은 것 같다. 그렇게.. 광주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손오공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로 올라가니 물길이 우리는 반겨 주셨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따뜻한 느낌이었다. 삶디 센터도 좋았지만, 하자에 오니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물론 더러운 것은.. 그래도 더려웠다… 녹음 스튜디오나 연습실도 삼디가 훨신 좋았기도 했고….

어쨋든 광주 여행을 통해 삶디라는 새로운 열을 만났고,  5・18민주 항쟁을 잊지 않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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