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행 리뷰 – 하늘

광주 여행 리뷰

광주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하자와 인연이 깊다는 삶디 센터를 방문했고, 삶디 센터의 씨앗이자 새로운 인연 삶디씨를 만났다. 첫 날, 우리는 정신없이 광주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버스에서 내리고, 또 정신없이 삶디 센터를 방문하고, 또 정신없이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전남도청은 생각보다 생생했다. 그 시대의 아픔들이, 그 시절의 고통이 잘 드러나 있었다. 그저 그런 팩트 나열이 아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주민들, 너무나 메마른 표정으로 총격을 가하고 있는 계엄군.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5.18의 아픔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가장 먼저 가본 특별관에는 각종 사진들이 있었다.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시민, 구타를 당해 사망한 청년을 부여잡고 우는 어머니, 무자비하게 시민들을 쓰러뜨리는 계엄군 등 마음을 울리는 사진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보다 더 마음을 울린 점은 이 사진 중 절반이 외국인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찍은 사진이라는 점이다. 특별관에서 나는 다시 한번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다. 본관으로 향하며 나는 기대했다. 특별관도 이리 잘 되어있는데 본관은 얼마나 더 대단할까. 본관에 도착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팩트들이 가슴을 울리는 영상 혹은 사진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고 너무나 참혹한 장면에 마음이 아팠지만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알아야 했고, 지켜봐야 했다. 너무나 아쉽게도 시간이 부족해 2관까지 보고 3관에 들어가 1층을 본 순간 시간이 끝나버렸다. 그 급한 와중에도 3관에서 봤던 사진이 너무 기억에 남아있다. 그 사진은 각도에 따라 1980년도 당시와 현재를 함께 볼 수 있었다. 지금의 너무도 평화로운 모습과 많이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아쉬움을 머금고 우리는 다시 삶디 센터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는 하와이 워크숍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이미 배운 내용인 줄 알았지만 새로운 내용도 있었다.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다. 또 하와이 워크숍을 삶디 센터의 노리들과 벼리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을까. 낯설고 어색한 환경에서 진행하는 익숙한 수업. 참으로 오묘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했다. 숙소에서 피곤을 풀고 잠이 드니 어느 새 아침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 2일차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우리는 삶디 투어를 해봤다. 항상 하자 투어를 하는 사람들을 보기만 했었지 우리가 투어를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자 투어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록 우리는 다시 하와이 워크숍을 시작했다. 그리고 곧 우리는 금남로로 나갔다. 몇백 대의 버스와 택시, 몇 천, 몇 만명의 사람이 모여 있던, 바로 그 금남로였다. 레드페스타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레드페스타를 진행하는 당시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더웠고,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참의미를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의미는 말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어떤 말도, 내가 느낀 것에 비하면 견주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말한다. “레드페스타에 참가하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그 소중했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대인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광주를 체험하길 기대했지만, 시장은 시장이었다. 서울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게다가 저녁을 사먹으라고 준 4만원. 그 돈으로 산 우리의 저녁식사도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날 먹은 것 중 성공은 없었다. 또 내 생에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돈을 써본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다리는 곧바로 주저앉을 것처럼 후들거렸고, 피부는 이미 뜨거운 햇빛에 공격을 받아 녹다운 상태였고,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너무나도 멀었다. 그리고 우리의 하루는 또다시 그렇게 지친 상태에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3일차. 3일차의 아침은 피로가 채 다 가지 않은 상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날의 일정은 조금 특별했다. 그 이유는 삶디씨였다. 이 날은 삶디씨가 오디세이를 위해 한 달 전부터 기획한 광주 여행을 하는 날이었다. 하루 종일 삶디씨와 함께 있으며 가장 친해질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광주 극장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난생 처음 단관 영화관을 봤다. 또 광주 극장은 이래저래 인상 깊은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용 영화관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놀라운데 그 규모나 좌석의 방식 등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김구 선생님이 서셨다는 그 무대에 직접 서게 되어 영광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우리는 곧 점심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치킨 팀과 국밥 팀으로 나누어져 삶디씨와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조금은 친근해진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의 투어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팀을 나누어 각 팀의 목표를 정해주었고, 우리는 그 목표들을 수행해 나가며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펭귄 마을, ACC 등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우리는 광주와, 그리고 삶디씨와 친해져갔다. 그렇게 아쉽던 하루가 마무리 되고, 자치 회의가 예정되어 있던 이날 저녁은 하와이 워크숍을 진행하신 알로나의 제안으로 조금은 특별해졌다. 작년에도 광주를 찾으셨던 알로나가 이곳에서 보신 장미축제의 모습을 잊지 못하셔 우리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다고 제안하신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선대 장미축제를 보기 위해 또다시 거리 위로 나섰다. 빡빡한 일정에 고된 몸이었지만, 도착하고 보니 우리를 생각하는 알로나의 마음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미들이 만발해 있었고, 그 꽃밭 위를 걷는 느낌은 정말 환상이었다. 꽃에 둘러 쌓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 3일차는 아름답게, 또 향기롭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날. 우리는 광주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5.18 묘지로 향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그곳에서 참배할 기회를 얻었다. 조용히 참배를 하며 잠시 묵념을 하는데 이상하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너무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기에 그 어떤 것도 선명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참배를 하고 나니 천방지축에 항상 활발한 오디세이는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열지 않고 어두운 표정으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묘지들을 둘러보며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자 죽돌들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워져만 갔다. 물론 나또한 그러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고, 감정이 있었다.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가장 강렬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5.18 묘지 참배로 3박 4일간의 광주 여행을 마무리지었다. 이 여행은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시기에 맞춰 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고, 서툴렀지만 그 사건을 기념하는데 우리가 조금의 도움이 되었다. 5.18 묘지를 둘러보며 들은 말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기억하지 못하기에 기념하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일어난 비극을 기억하되, 우리가 살기 전의, 기억하지 못하는 비극은 기념하며 잊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하고, 5.18 민주화 운동을 기념한다. 이런 기회와 깨달음이 나에게 주어져 참 감사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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