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6-0610-해남여행

여행을 가기 싫었다. 일요일이 항상 껴있기 때문에 가기도 싫었고, 여행을 가면 24시간 내내 남들과 붙어있어야 하고, 또 여행을 갔다 오면 몽롱해지는 정신 때문에 가기 싫었다. 그런데도 갔다. 고정희 추모 여행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채로.

나는 고정희라는 시인이 누군지 제대로 몰랐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추모하러 간다는 게 약간 우스웠다. ‘왜 가야하는걸까’ 라고 생각도 했다. 근데 어찌 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추모해서, 그래서 그 사람한테 조금이나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고정희 시인의 생가를 보고, 선착순으로 받은 책을 보고, 그리고 다른 죽돌들과 떠별들이 했던 시극을 보고, 그 사람이 쓴 시를 외우고 읽고. 생각보다 많이 행동했다. 우리는 왜 고정희 추모여행을 떠났던 것일까? 아직도 의문이다. 내 생각에는, 적어도 그녀가 남겼던 시와 그녀가 했던 행동들 그리고 삶과 문학세계를 엿보려고 간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주 조심스레.

고정희 추모여행이라는 타이틀이지만 세월호가 더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 같다. 세월호는 내가 직접 겪은 거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일이 지나갔는지 내가 내 눈으로 봤던 사건이니까.

팽목항에서 있던 분향소는 컨테이너로 지어져 있었다. 들어가서 흰국화꽃을 앞에다가 살면시 두고, 묵념을 했다. 시간이 너무 짧아서 깊게는 못했다. 그렇다고 밖에서 하자니 노란 리본을 보면 속이 답답해져서 버스 안으로 조금 빨리 들어갔다.

직접 본 세월호는 많이 컸다. 바로 앞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멀리서만 봐도 무척 거대했다. 많이 녹슬은 세월호는 뱃머리 근처에 영어로 ‘세월 ’이라고 써져있는 것도 조금 지워져 있었다. 유가족 분이 담담하게 말하셨다. 그다음에 녹슨 배를 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렬하게 비추던 햇살이 너무 신경쓰여서, 그리고 피부가 따가워서 집중하지 못했다. 세월호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게 너무 아쉽다. 내 눈에 제대로 선명하게 박아놓아야 잊어버리지 않을 텐데. 주변에 있던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펄럭였다. 색이 바래진 리본들이 많았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지난 건데, 나아진 것과 처벌 받은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로드스꼴라와 같이 한 자유여행은 처음에는 다사다난이였다. 내가 길잡이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게 속상했기도 하고, 로꼴 떠별들과 친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나는 조금 붕 떠있는 기분을 느꼈었다. 그래도 가면서 점차 친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친할 필요는 없었는데 어색함이 싫어서 친해질려고 노력했다. 주말로꼴이 오면서 조가 바뀌었는데 갑자기 진솔한 얘기를 하니까 조금 놀랍기도 했고,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이 여행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들도 있었고, 조금 상처가 되는 말들도 많았고, 마주하지 않을려고 내뱉은 말들도 있었다. 또한 움직이기 싫었던 때도 있었고, 이해하기 어려웠을 때도 있었으며, 속상했을 때도 있었기에, 나는 이 여행이 조금은 짜증났던 면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즐거웠고, 즐거울려고 노력했고, 자기 감정에 솔직했을 때도 있었음으로, 그럭저럭 좋은 면도 있었다. 마냥 불편한 여행은 아니였다. 다음에 또 해남에 간다면 느낄 수 있을 만큼 느끼고 올 생각이다. 그때는 어떤 여행이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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