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여행리뷰

마주할때,만나지는 것들.(뽀까)
네 바퀴에 의존해서 달리고 달렸다.정신없이 떨어지는 달콤한 잠들을 떨치려 들지 않고 그대로두니,열심히 달려온 6시간은 뻐근한 몸에만 남고 어디론가 사라져 우리를 해남에 내려놓았다.
해남은 그 특유의 색과 소리, 공기가 참 예쁜 곳이었다.아침공기,저녁노을,바다와 하늘 그리고 수평선,오랫동안 바라보면 서로의 반짝임을 견주는 별들,항상 어디서나 들려오는 새들의 이야기.어떤 사람들은 이번 여행 책자 표지를 꾸민 내 그림 속 색과 해남의 색이 너무 닮아서 해남에 다녀간 적 있는 사람의 그림인 줄 알았다고 했다.그 말을 들어서인지 해남의 색들을 더 열심히 찾았던 것 같다.내가 본 해남의 색들은 고요하고 고요했다.끝없이 고요하면서도 맑고, 텅텅 비어있어 한없이 넉넉했다.이제 나한테는 해남하면 떠오를 것 같은 몇몇색들이 어딘가에 살며시 자리잡았다.
바다에서 온 물방울들이 항상 잔디를 촉촉하게 해주고, 해남사람들의 인심을 닮은 바람은 뜨거운 햇빛을 잊게 해준다.솔잎들 사이로 보이는 훤히 빈 하늘에 혼자 빛나는 저녁노을 해와 그 아래 안개에 가려진 산 그리고 그 아래 바다에 비친 또 다른 그림들.이런것들이 바쁜 일정속에서도 여유로움을 느끼게 만들어줬던 낫낫한 해남의 선물이었다.
우리의 여행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그래서 더 많은 말소리가 들려왔다.새로움 사이의 긴장은 우리를 약간 불편하게 하기도 했지만,나는 그 불편함이 재밌었다.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곳에서 하는 일탈은 더더욱 재미났다.첫날밤 10시,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때까지 뛰논 음악분수, 몸을 담그고 노는 것 보단 건조해 보이는 사람들을 빠트리는게 더 재밌었던 6월의 땅끝바다, 한 순간 무너져 내릴게 뻔한 걸 알면서도 모래사장속에 열심히 묻고 묻히는 우리들.평소에 못하던 이야기들이 오가는 잠자기 전 이부자리까지.그 시간 속 우리들의 모습과 우리들의 웃음은 그 무엇보다 낭만적이었다.
누군가를,그의 생을,혹은 어떤 일을 기억하는 시간이었다.기억하고 기념하는 시간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것들과 만나고, 만날 때 피어오르는 감정들과 만나야했다.그러면서 무언가에 내 마음을 쓰는 것,시간을 쓰는 것.즉, 추모하는 것은 어떨때는 기쁘게 만나지기도하고 어떨때는 힘들게 만나지기도 한다.고정희 추모제는 전자였다.잔치가 열렸다.우리끼리가 아닌,고정희 시인과 함께.존경스럽고 부럽기도 한 것 같다.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을 시를 쓰고,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남은 것은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번 여행은 사실 여기저기 그냥 끌려다닌 느낌도 있어서 처음에는 고정희시인을 잘 몰랐다.사실 여전히 잘 모르기도 한다.여행에서 고정희 시인과 시를 많이 알지는 못해도 많이 느꼈던 것 같다.다시 두고두고 봐서 담아두고 싶은 시도 있었고 아직은 좀 어렵게 남은 시도 있었다.분명한것은, 한번쯤은 꼭 다시 펼쳐 보고픈 시들과 시인이라는 것 이다.지금은 그냥 호기심으로 남았을 뿐이지만,나중에 언젠가 내 발걸음으로 고정희 추모제를 다시 찾아갈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번여행에서 시를 배웠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이전에도 쉽게 훅 다가오는 시들을 좋아했다.하지만 어려운 시들을 보면 도망가기 바빴다.이번에 고정희 시인의 시뿐만아니라 여러 시들을 접하면서,그리고 시극을 준비하고 보면서 어려운 시를 ‘곱씹는 법’을 배웠다.그렇게 곱씹으면,알 수 있다는 걸,느낄 수 있다는걸 알게 됐다.짧디 짧막하더라도 자꾸보면 깊이깊이 들춰 볼 수 있는 아이라는 걸.
진도항에 다녀오고 목포항에서 세월호를 보았다.그리고 유가족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녹슨 배를 보고 있으면,감히 무어라 표현 못 할 감정들이 피어올랐다.그 큰 배는 더운 여름에 혼자 차갑고 아프고,또 쓸쓸해 보였다.해줄 말이 없었다.어떤 말을 떼어야 할 지 몰랐다.무엇이 위로가 될 지 몰랐다.그래서 그냥 토닥토닥 다독여주고 싶고,커다란 거인이 되어 안아주고 싶었다.마음이 무거워졌다.지금 그일을,그들을 떠올리면 슬픔과 화가 되어 만나지지만,언젠가 그냥 온전히 따듯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도록 나도 힘을 보태고 싶다.진상규명이 완전히 되고 사건이 마무리 지어진다하더라도 과연 온전히 따듯한 마음으로 만나질까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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