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여행 리뷰 – 퐁달

나는 ‘새로움’을 좋아하지만 싫어한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생각은 좋아서 늘 새로움을 찾고 배우고 싶지만 ‘새로운 환경’은 좋아하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마주할 때 나오는 나의 모습이 싫은 걸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은, 이런 여러 가지 의미로 힘들었고, 즐거웠다. 환경도 사람도 생각도 감정도 익숙함이 10%, 새로움이 90%였다. 이렇게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찼던, 그리고 아름다웠던 나의 여행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 본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건 새로운 사람들이었다. 로꼴. 지나다니기만 했지 대화란 걸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들. 근데, 그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무언가가 나를 압박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단체로, 숙소에서, 큰 공간에서, 조별로 활동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트라우마 라면 트라우마 인 것이 있다. 그리고 그 나이 대의 사람들에게도. 그냥 누군가에게, 또는 어딘가에 꼭 말하고 싶었다. 내가, 유독 ‘친화력’이란 걸 가지지 못한 내가 왜 그곳에서 그렇게 지쳤었는지.

뭐 어쨌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긴 했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기도 했고. 환경에 예민한 나는 사람에게 신경 쓸 새가 없긴 했지만! 그렇고 그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나는 간간히 만나는 잘 아는 내 친구들이 너무너무 반가웠다. 아직 많이 친하지 않은 오디세이 친구들에게도 이상하게 애정이 생겼다. 첫날, 밤에 음악 분수가 나와 친구들과 들어가서 뛰어놀았는데 정말 즐거웠다.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 혼돈 속에 있던 나를 구해준 느낌. 하지만 생각나는 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토요일 밤 음악 분수를 껐던 일이다. 길별&판돌의 요청으로 틀지 않았던 것인데, 위험하니 보기만 하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위험 요소를 없애버린 것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의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이번 여행의 큰 키워드인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이번 여행 중 가장 큰 기억이 남는 세월호의 감정은, 솔직히 말하자면 끔찍했다. 팽목항과 목포 신항.

팽목항에선 매서운 바람에 눈도 못 뜨며 생존자의 이야기를 글로 들었고, 유가족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사건 현장에서 유가족의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울며 노래했다. 목포 신항에선. 세월호를 보러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 곳이 제일 힘들었다. 나는 누군가의 죽음의 현장을 보기엔 너무. 준비되지 않았다. 서로에게 의지하라고 해서 일단 벼텼다. 노래했고, 유가족의 글을 읽었다.

이렇게 고통을 느껴야 내가, 우리가 추모한다 말할 수 있는 걸까. 이렇게 정신적으로 슬픔도 못 느낄 정도로 위압감 있는 곳에서 다 같이 울어야 추모인가.

나올 때 나 쓰러지지 않을까, 했지만 손 잡아준 친구 덕분에 괜찮아졌다. 조금. 하지만 내가 왜 이걸 보고 왜 그곳에서 노래해야 했는지. 나는 이런 걸 추모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읨의 준비도 없이. 그냥 일단 현장부터 가고. 우리의 추모 방식이라며 슬픔을 말하고. 나는 그 순간 이런 분위기를 왜 만들까, 생각했다. 울지 않아도, 슬픈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고통스럽지 않아도 그 공간에 간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개인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폭력일지 모르는데. 그렇게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공간에서 힘든 이야기를 듣고 힘들게 노래부르는 모습이 나에겐 이상했다. 나에게도 건강한 추모를 하고 싶었다.

다시 세월호를 상기시키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긴 했지만, ‘세월호’라는 단어도 말하기 힘든 나는 힘든 감정만이 남았다.

세월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번 여행의 두 번째로 큰 키워드인 ‘고정희’ 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실은 나는 고정희 시인이 누군지 모른다. 나름 주제가 ‘고정희 추모 기행’인 여행을 다녀왔는데도 고정희 시인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는 게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내가 왜 처음 들어본 시인을 추모해야 하는지, 그 시인은 어떤 사람인지,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추모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고 의문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여행을 가기 전 이 여행의 의미가 뭔지, 왜 고정희 시인을 알고 추모해야 하는지 더 공부해 갔다면 더 뜻 깊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고정희 생가에 가서 추모제를 즐겼다. 기억에 남는 건 끝도 없이 펼쳐진 논밭을 배경으로 훌라댄스를 연습했던 것이다. 차도에서, 열심히. 아름다운 기억이다. 땅끝 해남의 논밭 풍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짧은 산책이 행복했다.

또 고정희와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미황사 라는 절에 갔다. 참 뜬금없이도 가자마자 108배를 했다. 나는 그런 식의 명상을 좋아해서인지 하면서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108배를 왜 한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미황사에 대해 더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더 좋은 말씀, 더 좋은 이야기를 주지스님께 들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간단한 미황사에 대한 소개와 “절 하세요 라고 하면 절하시면 됩니다” 라는 말과 함께 홀연히 사라진 주지스님 이었다. ( 108배를 하며 ‘부처 넌 뭐가 그렇게 쉽니’ 라고 생각했다던 선미가 떠오른다 )

백일장도 108배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설명이 없어 굉장히!!!! 아주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주제도 그랬다. 내 속의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잡은 주제라는 걸 알지만, 그래서 속의 이야기를 꺼낸 다른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긴 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글을 썼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로꼴, 주꼴과 더 가까워졌지만 그 수단이 너무 당황스러운 것들이 많지 않았나… 싶다.

전체적으로 너무 뜬금없고 당황스럽고 힘든 기억이 많은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을 반면교사 삼아 다음번 여행은 조금 더 기록하고 조금 더 기억하고 싶은 여행이었으면 한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갈 배울 수 있는 여행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한다. 이번 여행을 기억하고 다음 여행을 더 나은 여행으로 만들고 싶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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