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읽을거리 나눌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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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공방 방문 외

  지난 주 금요일, 오디세이학교 하자는 간만에 바깥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 목적은 통인동 근처에 자리한 가죽공방 '스튜디오 랩딥(studio labdip)'이었지만, 나간김에 통인시장에 들러 도시락카페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근처에 자리한 윤동주 문학관에 들러 다음 주에 오디세이학교 공동체 상영회로 볼 영화 '동주'의 주인공, 윤동주 시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저녁에는 국립극단에서 하고 있는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 를 단체 관람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지요. 이 날의 하루 스케치입니다.   통인시장 상인회에서 도시락카페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지금 우려되는 지점까지 아주 간략(?)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시간상 자세한 얘기를 듣지 못해서 아쉬웠다는.       도시락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향한, 가죽공방 스튜디오 랩딥입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근무하며 취미 생활로 가죽을 다루다가, 가죽공방을 차리게 된 약간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분이셨어요. 오디세이의 1년을 자긴만의 '취향과 철학'을 만들어 가는 기간이라며, 좋은 말씀도 많이 들려 주셨지요.       비교적 간단한 가죽제품 '명함지갑' 만들기 시범     윤동주 문학관에서는 몇몇 학생들이 윤동주 시를 외워와서, 시인의 언덕에서 낭송하는 시간도 잠시 가졌어요.   내일은 토요일이라는 사실에, 급!방긋 하는 학생들의 사진으로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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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꿈이 뭐냐고 아이에게 묻지 말자

  꿈이 뭐냐고 아이에게 묻지 말자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사회학을 가르치는 엄기호씨는 한국에서 공부에 대한 개념이 세 번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지금 공부를 하는 목적은 신분 상승이나 자아실현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2016년 06월 09일 (목) 17:51:49 [455호] 엄기호 (덕성여대 문화인류학 강사) "진로강의에 왔지만 나는 진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라는 '폭탄선언'으로 엄기호씨는 강의를 시작했다.  학생들이 장차 '노동하는 사람'이 아닌 '자아실현 하는 사람'이 될 것인 양 환상을 심어주는 현행 진로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서란다.  강의 제목대로 '입시를 견딘 청춘'이 대학에서 길을 잃는 이유도 어쩌면 이것과 관련이 있을 터. 5월 17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펼쳐진 두 번째 진로학교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대학 강단에 서다 보면 ‘진로=자아실현’인 양 착각하는 학생들을 흔히 만나게 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진로보다 오히려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해 묻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에서 공부에 대한 개념이 바뀐 계기가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1990년대 이전까지의 시기다. 이때까지는 왜 공부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 명확했다. 신분상승을 위해서였다. ‘공부가 재미있냐 재미없냐’는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그 시절에는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인과관계가 명확했다. 심지어 전두환 정부 때는 과외 금지 등 급진적인 조처가 행해진 결과 ‘공부를 통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판타지가 횡행했다. 그 덕분에 지독하게 가난했던 나와 내 누이도 이를 악물고 공부해 공장 대신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당시는 입시에 사회자본·문화자본 따위가 끼어들 여지도 별로 없었다. 외국에 살다 와서 영어 발음이 원어민 수준이라도 학력고사에서 통하는 건 오직 <성문종합영어>를 얼마나 열심히 외웠느냐였다. 질기게 공부해 ‘교육자본’을 다져놓으면 이것을 나중에 ‘경제자본’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믿음, 여기서 지식의 권위가 생겨났던 것이다. ⓒ시사IN 신선영 엄기호씨는 “자신의 삶을 탁월한 삶, 멋진 삶, 자유로운 삶으로 바꿔낼 수 있는 ‘삶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좀 더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학력고사는 너무나도 예측 가능한 시험이었다. 학력고사 다음 날이면 일등부터 꼴찌까지 전국 순위가 나오면서 내가 대학에 갈 수 있는지, 간다면 어느 대학에 갈지를 단번에 계산할 수 있었다. 예측 가능성이 작동하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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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정희진의 낯선 사이] 피해를 공유하는 윤리

나홍진 감독의 <곡성(哭聲)>은 생각보다는 덜 무서웠다. 다음날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스톱(Stop)>을 보았는데 정말 무서웠다. <스톱>은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 당시 지역 주민인 젊은 부부의 임신과 이를 둘러싼 갈등을 다룬다. <곡성>이 단순한 귀신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공포(귀신)보다 인간 자신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려움의 원인은 언제나 우리 내부에 있다. 여성의 출산과 자기 결정권, 사고 지역의 고립, 에너지 소비의 계급성(전기로 돈을 버는 사람과 그로 인해 삶이 파괴되는 사람), 어린 피해자를 향한 또래들의 이지메, ‘기형아’에 대한 공포, 일본 정부의 태도, 감독 특유의 여성과 남성에 대한 묘사…. 이 모든 이슈에 관심 있는 나로서는 매순간이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사고 지역에 몰래 들어가 돼지고기를 도축하여 도쿄 중심가 음식점에 내다파는 청년의 이야기가 좋았다. 남자 주인공이 청년에게 “미친 놈, 범죄자”라며 고발하겠다고 소리치자, 그는 “온 국민이 방사능에 오염된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알고 먹을 사람은 없으므로 자기가 몰래 ‘먹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했다. 감독은 타인의 고통을 ‘마음’으로 공감하는 윤리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피해를 ‘행동’으로 공유시키는 윤리를 제안한다. “전기는 도쿄에서 쓰는데 피해는 왜 우리가 봐야 해!” 이는 “다 같이 망하자”는 논리가 아니다. 원전 자체를 없애야 하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므로 일시적인 ‘해결’은 피해를 보편화하는 것이다. 행하는 사람(주체)과 당하는 사람(대상)의 구분을 없애고 타자(他者)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실험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국외자라는 사실을 모른다. 전체의 동등한 일부, 보편자라고 생각한다. ‘불행은 남의 일이다. 나에게 일어날 리 없다. 국가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희망이 없다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손쉬운 발상인 저항이나 진실을 제시하기보다 관객의 위치를 질문한다. 문제는 ‘도쿄’와 ‘서울’이, 특정 지역(후쿠시마, 밀양, 강정…)에 위험 시설을 건설하여 끊임없이 내부 식민지를 만들어내는 현실이다. 한국사회는 문제가 생기면 은폐(그것도 대충), 책임자의 거짓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림, 여론이 조용해질 때까지 방관, 소 잃고 외양간 안 고치기, 피해자 고립을 대책으로 삼는 나라다. 진상규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를 고사시키고 문제를 떠넘긴다. 통치 세력은 이 문제에 관한한 대단히 발전된 메커니즘과 언어를 갖고 있다. 희생양을 생산하는 방식은 타인과 완전한 단절을 추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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